문화생활

조선의 포로에서 일본의 성녀가 되다! 오다 쥬리아의 극적인 삶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넘어간 조선인 오다 쥬리아는 일본에서 평생 신앙인으로 살았다. 그는 배교의 압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명성을 얻었고, 그녀가 순교했다고 전해지는 장소에서는 민속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전쟁고아에서 일본의 신이 된 그의 이야기는 전쟁의 비극과 민중의 기구한 삶을 잘 보여준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고니시 유키나가는 평양성을 공격하며 많은 조선 백성을 포로로 잡았다. 그중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남동생이 있었다. 고니시는 여자아이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를 데리고 가기로 결정했다. 고니시는 그를 수양딸처럼 여겼고, 일본으로 돌아갔을 때 가톨릭 신앙을 권했다. 소녀는 승낙하고 '쥬리아'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임진왜란 패전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고 권력 투쟁이 벌어졌다. 고니시는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를 지지했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패배해 참수당했다. 이에야스는 쥬리아의 우아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시중을 들게 했고, 쥬리아는 신앙인으로서 존경받는 삶을 살았다. 이후, 쥬리아는 남동생 김운낙과 일본에서 재회했다.

 

하지만 쥬리아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에도 막부는 기독교를 금지하며 그를 유배 보냈고, 쥬리아는 배교를 거부했다. 그의 경건한 삶은 선교사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유배지에서는 쥬리아를 기리는 신사까지 세워졌다. 1620년 유배에서 풀려난 쥬리아는 오사카와 나가사키에서 천주교 선교 활동을 계속했다. 그의 이야기는 조선의 포로에서 일본의 성녀로 변모한 경건한 삶을 보여준다.